복잡계 개론 요약 2
2. 복잡계 이론의 배경
복잡성과 복잡계는 근래 갑자기 발견된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 속에서 복잡성의 존재는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역사를 살펴보면 복잡성은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지성에 의해 끊임없이 재발견되어왔다. 다만 과거에는 다양한 복잡성을 하나의 틀로 담아낼 만큼 세세한 지식이 축적되지 못했으며, 이를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이론화할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독립된 영역으로 자리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학의 지평이 넓어지고 시야가 트이면서 이러한 다양한 영역의 복잡성을 하나의 틀로 바라보는 새로운 흐름으로 터져나온 것이 바로 복잡성 과학(complexity scinece)이다.
복잡계 이론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태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의 조류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은 다양한 계층구조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함을 추구했던 초기 과학
근대 서구의 과학철학을 꿰뚫는 유명한 명제가 있다. 바로 “본질은 필요이상으로 부풀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이라고 불리는 이 명제는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간명한 이론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인과적 결정론(causal determinism)과 방법론적 환원주의(methodological reductionism)의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천동설은 당시까지 알려진 여러 천문현상을 아주 정교하게 기술 했고, 설명의 정밀도 또한 매우 높은 이론이였다. 코페르니쿠스가 제시한 지동설은 예측의 정밀도 면에서 천동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동설은 바로 간단함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천동설은 새로운 관측사실들을 설명하기위해서 매우 복잡해진 반면 지동설은 천구의 중심에 태양이 놓여 있다는 꺼림칙한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모든 천체는 훨씬 적은 수의 원 운동만으로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었던 점은 바로 이러한 간명한 질서에 대한 믿음이었다.
인과적결정론의 시대 (물리학)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세 가지 운동법칙이라는 근본법칙을 제시하면서 인과적 결정론이 시작되었다. 인과적 결정론에 의하면 모든 행위에는 원인이 있으며, 모든 자연현상의 원인을 거슬러 추적하면 일체의 초자연적 영향을 배제한 만물의 이론에 도달하게된다, 18세기 들어 뉴턴 역학은 영국을 벗어나 전 유럽으로 확산되며 커다란 발전을 이뤘으며, 그 정점에는 프랑스의 라플라스가 있었다. 그는 인과적 결정론의 열렬한 신봉자로서 사회현상을 포괄하는 모든 자연현상은 수학으로 기술되는 인과론적 원리에 의해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중반까지 라플라스의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경험에 입각한 실험과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광학, 열역학, 전자기학에도 수학적 방법론이 깊이 침투하여 진정한 의미의 이론물리학 출현에 큰 밑 바탕이 만들어졌다.
생명현상의 환원주의적 연구 (생물학)
자연과학의 발전은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조화롭고 신비로운 생명에 대한 이미지는 16–17세기에 이르러 물질문명의 발전과 함께 기계론이 나오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여기에는 인체라는 기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작은 요소들로 분해하여 그 각각의 기능을 탐구해야 한다는 환원주의적 생각이 깔려있었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기계론은 인체를 하나의 기계로서 이해하고, 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것을 말한다. 기계론적 관점의 데카르트의 인간의 핏줄에 대한 시각은 비교적 정확했는데, 핏줄이 파이프의 역할을 해서 영양분을 공급한다는 시각이다. 이는 하비의 혈액순환론으로 이어졌다. 하비의 혈액순환론은 생리학 분야에 혁명적인 일이였고 이는 (하비자신은 기계론자가 아니였음에도) 생명현상에 대한 기계론적 사고를 확대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18세기에 이르자 기계론은 유물론과 결합하여 더욱 심화되었고, 화학의 발전과 함께 현미경이 발명되어 환원론적 사고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는 공기가 산소, 질소, 수소 등 여러 기체의 혼합물임을 알아냈고, 화학반응에 대한 중요한 이론들을 세우면서 생물의 호흡 또한 산화작용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18세기에 급속히 확산되던 자연현상을 물리학과 수학으로 환원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명현상도 화학으로 환원하여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19세기 들어 세포론의 형성, 발생학과 미생물학의 등장, 진화론의 태동 등 중대한 진보가 이뤄졌다. 물리학과 화학의 새로운 지식과 방법론들이 의학과 생물학에 깊숙이 침투하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의 창이 열린것이다.
확률적 세계관과 통계역학의 출현
라플라스 프로그램이 추구한 완벽한 결정론에 대한 도전은 열현상으로부터 제기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줄, 클라우지우스 등의 연구에서 열현상은 분자들의 운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자들의 운동에 의한 에너지를 열이라고 생각하면 간명한 설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문제를 풀기가 너무 힘들었다. 분자라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맥스웰은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기체분자의 동역학을 통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어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이 이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통계역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멕스웰과 볼츠만의 시대까지 발전해온 평형계에 대한 통계역학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구성요소의 수가 매우 많아 다루기 어려웠던 계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혔다. 통계역학의 방법론은 이후 20세기에도 계속 발전하며 과학적인 복잡계 이론의 탄생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뉴턴 역학에서 예상할 수 없었던 비가역성과 시간의 화살 문제(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른다. )를 통해, 개개 입자 차원에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이 수많은 입자들이 얽히면서 거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창발현상에 대한 통계역학적인 이해도 깊어지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과 생태학의 등장
자연을 구성하는 생물에 대한 연구는 17–19세기에 걸친 지리상의 대발견으로 생각보다 많은 수의 생물종들이 존재함을 인식하면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인류의 인식을 뒤바꾼 다윈의 역작 종의 기원이 나오게 된다 .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이 서식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들만이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아 후손을 번성시킨다는 그의 이론은, 유명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말로 잘 요약된다. 19세기 중반에 나온 열역학 제2법칙과 볼츠만의 통계역학에 의한 시간의 화살 개념은 우주의 암울한 종말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닫힌 시스템으로 본다면 엔트로피가 점점 증가하여 최후에는 모든 것이 균일하게 열평형을 이룬 상태로 귀결될 운명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생물체는 정반대로 태고의 유기물덩어리에서 점차 생명의 조직을 만들면서 고등한 기능을 갖춰왔다. 시간의 화살을 거슬러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이러한 과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진화에 대한 인식은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도 일침을 가한다. 생물을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기계로 파악하는 관점만으로는 열역학 제2법칙과는 확연히 다른 진화의 문제에 접근할 수 없었다. 생물 외부환경의 영향이 생존과 변이에 궁극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미시적인 세부기능의 탐구로만 생명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드러난셈이었다.
생태학
그래서 독일의 생물학자 헤켈은 독일에 진화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생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이름을 만들어 낸다. 각 생물집단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었으며, 이들 사이의 관계, 즉 생물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부상했다.
그러한 관계의 첫 인식의 하나가 질소의 순환과정이었다. 지구 대기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질소는 여러 박테리아에 의해 고정되어 질산염으로 식물의 비료로 쓰이고 다양한 동물의 먹이가 되어 생체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이들 생물이 죽으면 다시 여러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되어 질소 성분은 대기와 토양으로 돌아간다. 이후 생활권, 생태계 등의 관점등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관점들이 확립되면서 오늘날까지 활발한 발전과 논의가 이어졌다.
진화적 게임 이론
1930년 피셔는 다윈의 진화론을 게임 이론과 결합시켜서 진화적 게임 이론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내며 개체들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지평을 열었다. 최근에는 생물 종의 협력과 진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계의 협력과 진화를 설명하는 도구로 확장되었다. 진화적 게임 이론에서 다루는 진화는 종의 진화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바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믿음, 표준, 규범, 습관 등의 변화와 같은 문화적 진화로 확장이 가능하다. 또한 게임이론의 중요한 가정이던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적응과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과 접목되면서 완화되었다.
진화적 게임이론은 엑설로드가 제안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인간의 협조와 신뢰 이론에 대한 기초가 된다. 신뢰를 요구하는 두 사람 사이의 거래가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모형화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집단의 협조 행동은 많은 선수가 반복적인 게임을 하는것으로 모형화될 수 있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행위자 기반 모형과 접목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복잡계의 미시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영향을 주었다.(액설로드의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각가 다른 전략을 가진 가상의 많은 죄수들끼리 맞대응이 오랜 시간 반복될 때 이기적으로 배신하는 전략은 결국 매우 나쁜 성적을 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좀더 이타적으로 협력을 추구하는 전략은 좀더 나은 성적을 보였다. 그는 이로써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수수께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진화론에서는 자연 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에 골몰하는데, 어떻게 생태계와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이타적인 행동이 자연선택의 이기적인 메커니즘으로부터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가장효과적인 전략은 “관용적인 Tit-For-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다. 상대방이 배신하면 다음판에 보복하는 게 원칙(“그냥 Tit-For-Tat”)이지만 가끔은 용서해주는 것이다. )
현대 복잡계 이론의 문턱
전체를 바라보기 : 시스템 이론의 등장
제2법칙에 다루는 닫힌 시스템은 시간의 화살에 의해 열평형 상태로 향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변화 무쌍하게 적응하고 진화하며 분화하는 생명현상, 즉 복잡성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베르탈란피는 생체계를 외부와 끊임 없이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소통하는 ‘열린 시스템’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 지었다. 이러한 인식이 하나의 이론체계로 발전하며 마침내 시스템 이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시스템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시스템은 “상호작용하는 개체 또는 개체군으로 이루어진 총체”를 의미한다. 시스템 이론은 여기서 다양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중요한 흐름의 하나는 자연과학 및 공학 분야에서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4C”의 등장이었다. “4C”이론이란 1950–1960년대에 유행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1970년대에 유행한 파국 이론(catastrophe theory), 1980년대에 유행한 혼돈 이론(chaos theroy)를 거쳐 1990년대 이후 유행한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 theory)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야기한다.
한편 사회학 분야에서 자리잡은 사회학적 체계 이론(sociological systems theory)이 있다. 이것은 독읠 사회학자 루만이 개척한 분야로 사회 내의 소통구조에 주목하여 각종 제도와 조직의 구성과 진화를 설명했다. 또한 경영학의 조직 이론에서 시스템 이론의 개념을 수용하여, 조직을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이내믹한 유기체로 보는 관점이 발달해왔으며, 이는 시스템 사고라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사이버네틱스와 되먹임, 자기조직화의 인식
사이버네틱스란 살아있는 생물체나 복잡한 기계에서 보이는 자기규제시스템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분야를 지칭한다. 사이버네틱스의 중요한 목적은 시스템이 수시로 변화하는 조건들을 극복하면서 예정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데 있다. 생물체가 그러한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생물체들의 행동은 단순히 계획된 과정에 의해 천편일률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며, 외부로 열어놓은 감각기관들로부터 얻어지는 정보를 끊임없이 처리하며 그에 따라 반응하는 되먹임이 생물체들의 행동메커니즘에 내재되어 있다. 영국의 정신과 의사였던 애슈피는 사이버네틱스를 신경계 모형에 접목, 발전시켰다. 그는 뇌를 수많은 신경이 복잡한 그물망을 이루며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회로와 같이 모형화했다. 또한 인지, 사고, 기억등의 두뇌활동은 신경들이 다양한 되먹임 고리를 이루면서 주고 받는 영향의 결과로 설명했다. 베르탈린피의 열린 시스템 개념을 이용하여 생체계가 에너지 측면에서는 열려 있으나, 정보와 제어 측면에서는 닫혀 있는 시스템이라고 인식했다. 오늘날 복잡계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자기조직화’란 용어도 최초로 사용했다.
파국 이론과 단절적 변화
파국이론은 단절적인 변화에 대한 수학적인 설명의 하나로 등장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관촬되는 급격한 변화를 어떠한 안정상태들 사이의 급격한 전이로 바라보고, 이를 수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파국이론은 이러한 변화들이 항상 안정된 평형상태를 따라 나아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파국이론은 혼돈이론과 복잡계 이론에 단절적 변화의 이슈를 넘겨주게 된다.